자녀 역사교육 참고 자료/조선왕조이야기

왕위 찬탈자, 세조 - 계유정난의 피바람으로 권력을 잡다.

평산훈남 2023. 9. 4.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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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평산훈남 아홉번째 역사스토리는 조선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왕위를 찬탈하여 왕이 된 수양대군, 세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시의 왕을 끌어내리고 왕이 된 이는 연산군을 끌어내린 중종과, 광해군을 끌어내린 인조가 있지만 이는 반정이라는 이름으로 실행된 일종의 혁명이었고 이전 왕들을 죽였다는 기록은 없어요. 그러나 세조는 조카였던 단종을 상왕으로 밀어내었다가 다시 노산군으로 강등시킨 후 유배보내고 끝내 사약을 내렸으니 조선왕조에서 유일하게 왕위를 찬탈한 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어요.

영화 <관상>
영화 <관상>

세종대왕이라는 한민족 최고의 성군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나 친형제들과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은 세조, 수양대군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 세조 키워드

  • #한명회
  • #계유정난
  • #사육신
  • #화려한 업적

세조에 대한 키워드를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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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회

조선 유일의 왕위찬탈자 옆에는 조선 최고의 킹메이커라 평가받는 한명회가 있었어요. 이성계정도전, 이방원하륜에 이은 최고의 킹메이커 중 한사람이 한명회입니다. 한명회는 명문가의 자제로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과거시험에는 단 한번도 합격하지 못했었어요. 학문을 닦는 머리보다는 처세술의 달인이었던 거죠. 과거에 합격을 못하자 음서라고하는 제도를 통하여 말단 관직에 있었어요. 음서라는 제도는 공신의 자제를 과거시험 없이 관리로 채용하는 제도였어요. 그래서 경덕궁이라고 하는 곳의 궁지기를 하고있던 한명회를 그의 친한 친구인 권람이 수양대군에게 추천하여 두사람이 어이지게 된 것이죠. 수양대군은 한명회를 만난자리에서 오랜친구를 만난것처럼 친근하게 대하였고 한명회 역시 자신의 책략을 아낌없이 말하니 그 자리에서 수양대군은 큰 뜻을 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쨋든 한명회는 칠삭둥이로 유명해요. 7달만에 태어나서 척추뼈에 문제있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다녔다고도 해요. 그리고 서울의 그 압구정동이 한명회가 지은 압구정이라고 하는 정자에서 그 이름이 유례되었다고도 하죠. 여튼 한명회는 세조를 만나 계유정난단종폐위세조 즉위를 기획한 실질적은 장본인이 되었어요. 한명회가 이렇게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칠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그의 직위가 궁지기라고 하는 말단관리였기 때문에 세상의 이목을 끌지않아서 가능했다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도 일리있는 말이라고 생각되네요. 이렇게 세조의 치세하에 엄청난 공을 세운 한명회는 세조의 총애를 등에업고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쥐게 되고 당시의 다른 권력자인 신숙주, 권람과도 혼인관계를 맺어 그 정치적 기반이 정말 대단했다고 해요. 심지어 세조의 아들인 예종과, 손자인 성종의 장인자리까지 차지했다고 하니 정말 조선왕조를 통틀어서 이정도의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은 아마도 없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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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

계유정난은 수양대군한명회, 신숙주 등의 측근들과 함께 안평대군김종서를 제거하고 권력의 주도권을 잡은 군사 정변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게 계유정난은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사건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다시한번 정리하지만 계유정난은 수양대군이 그의 정적인 안평대군과 김종서를 제거한 사건이고 그 이후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선위를 함으로서 세조가 되고 단종은 상왕이 되었어요. 이후 사육신의 난이 발생하면서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 및 영월로 유배를 가게되고 이후에 수양대군이 단종에게 사약을 내림으로서 그의 짧은 생이 마감되었어요.

계유정난을 계획함에 있어 한명회는 수양대군으로 하여금 당시의 최고 권력가이자 단종의 후견인인 김종서 장군을 제거하게 함과 동시에 자신은 궁궐의 수비를 책임지는 경비대장을 포섭하여 궁을 장악하고 미리 작성한 살생부로 입궐하는 대신들을 처단하는 등의 치밀한 계획을 세웠어요. 문종이 사망하기전 그의 어린아들을 염려하여 김종서에게 단종을 잘 보살필것을 부탁하였고 김종서 장군은 그 명을 착실히 수행하였어요. 당시에는 세종의 아들 중 첫째 문종은 이미 사망하였고 둘째인 수양대군을 따르는 무리와 셋째 안평대군을 따르는 무리, 그리고 김종서 장군을 따르는 무리가 있었어요. 안평대군은 단종을 매우 아끼고 있었기 때문에 김종서와 한편이 되었죠. 이에 위기감을 느낀 수양대군은 늦은밤에 김종서의 집으로 찾아가 문앞에서 만난 김종서에게 편지한장 건내며 읽어보라고 하였어요. 어두운 밤이라 김종서는 그 편지를 읽기위헤 집중하였고 그 틈을 타 수양대군의 수하가 철퇴로 김종서 장군의 머리를 내리쳐서 쓰러뜨려 버렸죠. 당대의 최고 권략자라는 사람의 마지막이 너무나도 허망해 졌죠. 김종서를 제거한 수양대군은 그 길로 단종에게 찾아가 김종서가 안평대군과 작당하여 모반을 꾀하여 자신이 그를 처단하였다고 보고합니다. 야사에서는 이때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한말이 "삼촌, 살려주세요." 였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왕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이렇게 반응했을까요. 이때 한명회는 가짜 어명을 내려서 전체 대신들에게 입궁하라고 하였고 늦은밤에 부랴부랴 입궁하는 대신들은 미리 만들어진 살생부에 의하여 목숨을 잃게 되었는데 이때 영의정 황보인 등이 사망했어요. 순식간에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김종서, 우의정 정분이 죽고 안평대군은 유배간 후 사약이 내려져 사망하였으니 수양대군이 엄청난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이죠. 이때 부터 가장 높은 벼슬인 영의정과 병권을 관리하는 병조판서, 인사권을 가지는 이조판서 등을 수양대군 한사람이 독차지 하였다고 해요. 수양대군의 권력에 굴복한 단종은 결국 2년뒤 그에게 선위하면서 자신은 상왕이 되고 세조가 왕위에 등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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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사육신은 말 그대로 죽은 여섯명의 신하 라는 뜻입니다. 단종이 상왕으로 밀려나고 세조가 즉위를 하자 집현전 학자를 중심으로 세조를 처단하고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해 뜻있는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그중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유응보, 유성원, 이개 여섯사람이 중심이 되어 거사를 도모하기위해 계획을 세우가 되죠. 이때 어마어마한 기회게 생기게 되는데 명나라의 사신을 접대하는 자리에 왕을 지키는 별운검이라고 하는 호위무사를 사육신의 한사람인 유응보와 성삼문의 아버지인 성승이 수행하게 된 것이죠. 당시 왕이 주관하는 연회장에는 왕을 호위하기 위해 고위 무관들로 이루어진 별운검이라고 하는 무사 딱 두명만이 무장하고 참석할 수 있었다고 해요. 이 유일하게 무장한 두사람이 모두 사육신쪽 사람이었으니 정말 기회도 이런 기회가 없었죠. 그냥 당당하게 칼차고 서있다가 뒤에서 왕인 세조와 그의 아들 세자, 최측근인 한명회신숙주 등을 그냥 죽여버리면 간단하게 혁명 성공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역사가 참 재미있는게 연회가 시작되기 전날 한명회가 연회장을 답사하고 난 이후 세조에게 이르기를 연회장이 좁으니 별운검을 들이지 말라고 건의 했다고 해요. 이에 성삼문은 법도에 맞지 않다고 하면서 별운검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결국 한명회의 말대로 세조는 별운검을 들이지 않았고 거사는 무산되고 말았죠. 이렇게 한명회는 뭔가 눈치를 챈것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세조의 목숨을 구한셈이 되어 버린거죠. 이때 유응부는 어찌되었건 거사는 진행해야 한다며 강경대응을 주장하였지만 성삼문, 박팽년등이 주장하여 후일을 도모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길제라고 하는 사람이 배신을하고 세조에게 혁명에 대한 계획을 모두 고자질해 버리니 사육신을 비롯한 가담자들은 모조리 잡혀가서 취조를 당하게 되는데 이때 세조가 직접 추국을 하였다고 해요. 사육신은 이자리에서도 세조에게 전하라는 호칭을 쓰지않고 나으리라는 호칭을 써서 자신들의 임금으로 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요. 이에 너무나도화가난 세조는 사육신을 모조리 능지처참 시켜버렸다고 해요. 이 사육신의 난이 무산되고 난 후 이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영월로 귀향가게 되고 이때까지 단종을 보살피고 그의 뒷배가 되어주던 또 다른 세조의 친동생인 금성대군도 죽임을 당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세조는 자신의 친자식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되면 가차없이 죽여버리는 잔인함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의 할아버지 태종 이방원과 많이 닮은면이 있으면서도 친동생을 살해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점을 보이는 부분이에요. 여튼 단종은 영월로 귀향보내진 이후 결국은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게 되고 그래도 한나라의 군주였던사람이 사약을 먹고 죽을수는 없다하여 자신의 목에 끈을 묶고 시종으로 하여금 문밖에서 그 끈을 잡아당기게 하여 교살당해 죽었다고 해요.

 

#화려한 업적

세조는 조카인 단종을 폐위시키고 친동생인 안평대군,금성대군 및 조정 대신인 황보인, 김종서 등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였지만 그가 왕위에 있을때 뜻밖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어요. 이런 점에서 근대사의 박정희 대통령과 좀 닮은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두 지도자 모두 쿠테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고 어떻게 보면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도 하였지만 그 들의 업적 또한 적지 않으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전 박정희 대통령의 군부독재, 인권탄압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냥 그 업적이 적지 않다는 것은 팩트이기 때문에 언급한 거니 오해 말아 주세요. 여튼 세조의 많은 업적 중 제생각에는 경국대전 편찬 시작이 으뜸이지 않을까 합니다. 경국대전은 조선의 헌법과 같은 것인데 흔히들 세조의 손자인 성종의 업적으로 알고있지만  경국대전 편찬을 지시하고 시작한 사람이 세조입니다. 그 편찬사업이 성종 재위기간에 마무리 되어 성종의 업적으로만 많이들 알고 계시는 거죠. 경국대전 편찬 외에도 조선의 자주성을 강화하기 위해 환구단(원구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지냈어요. 이게 뭐 대단한 일인가 싶으시겠지만 이 시대에 하늘에 제사를 지낼수 있는 사람은 황제 밖에 없었어요. 즉 명의 황제만이 환구단을 만들고 거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낼수 있었던 상징성이 있는 거에요. 그런데 조선의 왕이 환구단을 만들었다는 것은 당시 동북아시아의 정세에서는 대단히 간큰 행동인 것이죠. 현재 시대에 비유하면 우리나라가 핵폭탄 만든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가 핵폭탄을 떡하니 만들어 버리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열강들이 우리나라에 엄청난 비난과 제제와 간섭을 하겠죠? 그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조선에서 환구단을 만든 왕은 전기의 세조와 대한제국을 만들고 황제로 올라선 고종이 유일합니다. 그리고 고대사를 다시 정리하기 위해 동국통감 이라는 책을 편찬하기 시작하였으나 아쉽게도 완성하지는 못했다고 하네요. 또 태조부터 자신의 형인 문종대 까지의 선왕들의 업적을 정리한 국조보감을 편찬하기도 하는등 다양한 편찬사업을 진행하였어요. 

그리고 명분만을 강조하는 성리학을 견제하기 위하여 도교, 불교, 과학기술 분야의 발전을 도모하기도 하고 백성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농업, 목축, 양잠에 관련된 서책들을 한글로 편찬하기도 하였어요. 그리고 공물의 대납제도를 없에기도 하고 과전법을 폐지하고 직전법을 시행하여 현재 관직에 있는 사람에게만 수조권을 주는 등 민생의 안정을 도모하고 조정의 재정을 튼튼하게 하였어요. 그리고 태종의 대에 실시되었다가 세종의 대에 사라진 6조 직계제를 다시 시행하여 왕권 강화도 이루어내었죠. 다만 집현전경연을 폐지한건 많은 업적들 중 오점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것 같아요.

 

#결론

세조는 분명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왕위에 오른 왕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의 조카와, 친동생들, 조정 대신들을 살해하고 빼앗은 권력을 자신들의 측근인 공신들과만 나누어 그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철옹성같은 권세를 누린 왕이죠. 하지만 왕이 되기 전의 수양대군과 왕이 되고 난 이후의 세조는 그 평가를 좀 다르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왕이 되고 난 이후의 세조는 조선의 다른 왕 중에서도 손에 꼽힐만큼의 업적들을 남기신 분이기도 하기 때문인 거죠. 이렇게 능력이 뛰어난 세조가 그의 조카를 폐하지 않고 지키면서 그 능력을 펼쳤다면 후대에 엄청난 충신이자 능력자로 칭송받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상 평산훈남의 수양대군, 세조편을 마치겠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위 내용들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역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자녀분들이나 어떻게 역사 공부를 해야할지 그 방법을 모르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녀의 역사 교육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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