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가장 강력한 왕, 태종 이방원 - 왕권강화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은 왕
안녕하세요~
평산훈남 역사스토리 여섯번째 이야기는 태종 이방원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인 태조 이성계보다 더 유명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여러 매체에서 많이 다루어진 인물이니 많이들 아시겠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태종 역시 수많은 매체에서 다루어졌는데, 그중 대표적으로 <용의 눈물>, <태종 이방원>, <육룡이 나르샤> 등이 있습니다.
사진은 그중 제일 잘생긴 태종으로 골라봤어요 ^^;;
그럼 태종 이방원의 키워드부터 알아볼까요?
* 태종 키워드
- #하여가
- #왕자의난
- #왕권강화
태종 이방원은 아무래도 조선전기 아직 왕권이 확립되지 않은 시대의 군주이기 때문에 왕위에 오르기 전의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어요. 저도 조선건국 전 이야기와, 조선 건국 후 왕자시절 이야기, 그리고 왕위에 오른 이후의 이야기로 나누어 해보도록 할게요.
#하여가
하여가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히트시킨 대중가요입니다. 하지만 이 하여가라는 제목의 원작자는 시대를 거슬러올라가 약 500년전의 태종 이방원입니다. 조선건국 전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의 실권을 모두 장악하고 난 이후 신진사대부들의 지지를 받고는 있었지만 사대부중에서도 고려를 유지하면서 개혁을 요구하는 온건파 사대부와 역성형명을 통하여 새로은 왕조를 세우자는 급진파 사대부로 세력이 나뉘어 있었어요. 온건파 사대부의 대표가 정몽주이고, 급진파 사대부의 대표는 정도전이었어요. 이에 이방원은 온건파 사대부의 인재들 마저도 모두 회유하기 위하여 정몽주를 찾아가 시를 한수 읊었는데 이때 지어진 시의 제목이 하여가 입니다. 제가 학교다닐때는 국사 교과서에도 나올정도로 유명한 시인데 요즘 국사교과서에는 수록되었을지 궁금하네요. 하여튼 시를 통하여 고려 왕실을 정리하고 새로은 왕조를 세워서 태평성대를 누려보자 라는 내용을 정몽주에게 전달하였으나, 이 정몽주 역시 한수의 시로 답을 한게 단심가 라고 하는 시에요. 시로 회유하려는 시도를 시로 거절하고 이에 이방원은 정몽주를 더이상 설득하기 어렵다 생각하여 그를 선죽교에서 철퇴로 죽이게 되죠. 물론 이방원이 직접죽이지는 않았을거에요. 조영규라고하는 심복부하에게 사주하여 정몽주를 죽이게 했다고 해요. 또 일설에는 이방원이 주도하여 정몽주를 제거하였지만 그 못지않게 이방원의 둘째형이자 훗날 조선 두번째 왕이 되는 정종 이방과도 정몽주 암살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고 해요. 위에 설명된 하여가와 단심가를 소개해 드릴게요.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긔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 하여가 - 이방원
이 몸이 죽고 죽어 일 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단심가 - 정몽주
#왕자의난
온건파 사대부들을 모두 제거하고 급진파 사대부들과 함께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개국 공신에 대하여 포상을 하였어요. 당연히 1등공신에는 급진파 사대부들의 수장이자 이성계로 하여금 조선을 건국할 모든 능력을 다받쳤던 정도전을 비롯한 최측근 심복들 이었겠죠. 그렇지만 의아하게도 누구보다 이성계의 가까이에서 공을 많이 세운 왕자들은 공신목록에 들지도 못했어요. 어차피 아버지가 왕이고 자신들은 왕자의 신분으로 부족함 없는 삶이 보장되었기에 공신에 대한 욕심은 크게 없었던것 같지만 문제는 세자 책봉에서 부터 커지기 시작했죠. 이방원은 이성계와 신의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다섯째 아들이었어요. 하지만 이성계는 고향인 함경도에 신의왕후를 남겨놓고 중앙정권에 진출하기 위해 개경으로 들어와서 개경의 세력가 딸인 신덕왕후와 다시 결혼하게 되었어요. 이성계의 다섯 아들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친어머니가 있었지만 아버지가 신덕왕후와 결혼한것에 대하여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았고 신덕왕후를 작은어머니 대하듯 잘 모셨다고 해요. 하지만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고 세자를 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신덕왕후는 이성계를 부추기며 장성한 다섯아들 중 한명이 아닌 자신의 소생인 이방번을 세자려 앉혀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방번은 품행도 세자에 적합하지 않을 뿐더러 이방번의 장인이 옛 고려 왕실쪽 사람이라 정통성의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이성계는 10살정도 밖에 되지 않은 막내아들 이방석을 세자에 앉히게 됩니다. 이 때부터 이방원은 분노하기 시작하여 정변을 계획하게 됩니다. 사실 자신의 친모인 신의왕후는 조선건국 1년전에 사망하여 왕비의 자리게 앉아보지도 못했는데 작은어머니로 모시던 신덕왕후가 왕비에 앉아있는것도 솔직히 좀 아니꼬왔을것 같았지만 심지어 다음 보위를 잇게되는 세자자리마저도 자신들의 형제가 아닌 배다른 형제에게 넘어가버리니 피가 거꾸로 솓는 느낌이었을것 같아요. 그래서 이때 이방원은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복형제인 이방번, 이방석을 모두 죽여버리고 이방석을 지지하던 1등 개국공신이자 아버지의 오른팔인 정도전을 제거해 버립니다. 그리고 둘째형 이방과로 하여금 세자자리에 앉도록 하였어요. 자신이 세자자리에 앉고 싶었겠지만 장자계승의 원칙을 명분으로 정변을 일으킨 것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형제 중 가장 맞이인 둘째형에게 세자자리를 양보한 것이지요. 이런 이유로 조선의 두번째왕은 정종 이방과가 된 거에요. 1차 왕자의난 이후로 이방원의 세력이 엄청나게 커지고 권력이 이방원에게로 집중되자 넷째 형인 이방간이 조금 불안해하기 시작했어요. 어차피 둘째형과 셋째형은 왕위에 관심이 없어보여 형들을 잘 설득하면 자신이 다음 왕이 될것 같았는데 갑자기 동생인 이방원의 세력이 너무나도 커지니 결국 사고를 처버리죠. 1차왕자의 난 이후 공신책봉에 불만을 가진 박포와 함께 동생 이방원을 제거하기 위해 난을 일으켰는데 이 사건이 2차 왕자의 난 이에요. 이방간의 정변을 이방원이 잘 막아내면서 박포는 처형시키고 이방간은 차마 친형을 죽일수 없어 귀향을 보내버리면서 안그래도 컷던 권력이 더욱 커지게 되죠. 결국은 형이자 조선의 두번째 왕인 정종으로부터 양위의 형태로 왕권으 물려받아 조선 3대 왕인 태종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왕권강화
태종 이방원은 조선왕조를 통틀어 그 왕권이 가장 강력했던 군주로 평가 받고있어요. 실질적으로 명나라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한 왕도 태조 이성계가 아닌 태종 이방원이라고 해요. 태종은 왕이 되고 난 이후에 귀족들이 보유하고 있던 사병들을 모두 없에버렸어요. 사병을 모두 혁파하고 정규군으로 흡수해 버렸으며 6조 직계제를 시행하여 의정부의 권한을 축소하고 왕권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어요.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자신의 처가를 철저하게 탄압하여 풍비박산 내버렸어요. 이때 자신의 처남인 민무구, 민무질, 민무휼, 민무회를 모두 죽여버립니다. 외척에 대해서는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단호함을 보이죠. 이는 자신의 처가 뿐만 아니라 자신의 뒤를 이어 왕위를 이을 세자 충녕대군의 처가도 철저하게 탄압하여 멸문시켜 버립니다. 마치 피는 아비가 다 볼 터이니 나의 아들은 오직 선정만을 배풀어 성군으로 불리는 대왕이 되어라 라는 듯이 말이죠. 이는 정말 적중하여 태종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충녕대군은 조선왕조 아니 한민족 5천년역사 중 최고의 성군이라 평가받는 세종대왕이 되었으니 태종의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는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겠어요. 여튼 태종은 왕권을 위협하는 모든 요소를 철저하게 제거하였고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나름 많은 업적을 남기게 됩니다. 신문고를 설치하여 억울한 백성들을 도왔고 양전사업과 호구조사를 실시하여 세수확보에 노력하고 호패법을 실시했어요. 그리고 고려말 부패한 사찰의 토지를 몰수하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백성들도 구제했어요. 놀랍게도 거북선이 처음 만들어진게 태종 재위 시절이었다고 해요.
#결론
비록 형제들과의 싸움을 통하여 왕위에 오르고 많은 목숨을 빼앗으며 권력을 지켜낸 태종이지만 나름의 업적도 매우 많은 왕중에 한명입니다. 형제의 목숨을 담보로 왕위에 오른것도, 처남들의 목숨을 빼앗아 강화시킨 왕권도 모두 조선의 백성들을 위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태종 이방원. 그는 성군은 아닐지라도 조선의 500년 역사를 지탱하는 강력한 왕조의 주춧돌을 세운 왕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오늘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위 내용들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역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자녀분들이나 어떻게 역사 공부를 해야할지 그 방법을 모르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녀의 역사 교육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