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녀 역사교육 참고 자료/고려왕조이야기

고려 31대 공민왕: 원의 간섭을 끊고 개혁을 이끈 비운의 개혁 군주 이야기

by 평산훈남 2025. 6. 16.
반응형
🔍 요약: 고려 공민왕의 개혁과 반원 자주 정책, 신돈의 등장, 그리고 비극적 최후까지. 혼란 속 고려를 지키려 했던 공민왕의 삶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봅니다.

 

▲ 고려 31대왕 공민왕 [출처 : 드라마 "신의"]

 

"나라가, 나라답지 않구나..."

 

그날 밤, 어린 왕자는 어둠 속에서도 별빛이 아닌 현실을 보았어요. 원나라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고, 궁궐 안마저 원나라 환관들이 활보했지요. 그의 이름은 왕기(王祺), 훗날 공민왕으로 불릴 인물이었어요. 고려 제31대 국왕. 그는 단순한 왕이 아니었어요. 무너져 가는 나라를 일으키기 위한, 한 줄기 불꽃 같은 존재였지요.

📋 목차

📌 원 간섭의 굴레를 끊어라

1351년, 왕위에 오른 공민왕은 결심했어요.

"이제 고려는 고려의 길을 가야 한다."

 

즉위하자마자 그는 원나라로 끌려간 공주와의 정략결혼을 정리하고, 친원파 권문세족을 경계하기 시작했어요. 압록강 이북 영토 회복을 지시했고, 원이 강제로 설치한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탈환하기도 했어요. 원 간섭기에 억눌린 고려 백성들은 그의 결단에 열광했어요.

 

그러나 개혁이란 말처럼 쉽지 않았어요.

 

📌 신돈의 등장, 개혁의 칼날

▲ 신돈 [출처 : 드라마 "신돈"]

 

개혁에는 사람이 당연히 필요했어요. 공민왕은 새로운 인재를 찾아야 했지요. 그 선택은 정말 파격적이었어요. 천민 출신의 승려, 신돈.

"그는 천한 자가 아니다. 세상을 바꿀 자다."

 

공민왕은 그에게 국정을 맡기며 불합리한 토지제도와 부패한 권문세족을 단죄했어요.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해 농민에게 땅을 되돌려주고, 무너진 백성의 삶에 숨을 불어넣었어요.

 

하지만, 변화는 반발을 낳는 법. 기존 기득권층은 신돈과 공민왕을 적으로 돌리기 시작했어요.

 

📌 반란과 암살, 비운의 최후

신돈이 제거되고, 외적의 침입과 내란이 반복되며 공민왕은 점점 외로워졌어요. 믿었던 신하들은 등을 돌렸고, 궁궐은 더 이상 그에게 안식처가 아니었지요.

 

1374년, 숙청된 신하의 아들 홍륜이 공민왕의 침전으로 잠입했어요. 그리고… 한 줄기 비명이 궁을 가르며 퍼져나갔어요.

 

고려의 마지막 개혁 군주, 공민왕은 그렇게 암살되었어요. 향년 47세. 하지만 그의 의지는 훗날 조선의 성리학적 개혁과 개방의 정신으로 이어졌어요.

 

📌 시대가 감당하지 못한 왕

공민왕은 단순한 개혁 군주가 아니었어요. 고려라는 나라가 원의 속국에서 벗어나는 데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든 인물이었어요. 그러나 그는 그 시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앞서 나간 존재였던것 같아요. 개혁은 실패했지만, 그의 뜻은 이후 역사의 밑거름이 되었어요.

역사는 그를 잊지 않고있어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 + 댓글 은 큰 힘이 됩니다.

여러분의 응원은 컨텐츠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

고려 30대왕 충정왕 이야기 –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군주의 비극

 

고려 30대왕 충정왕 이야기 –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군주의 비극

🔍 요약: 고려 제30대 왕 충정왕, 충혜왕의 차남이자 충목왕의 이복형제. 원나라 간섭과 정치적 음모 속에서 왕위에 올랐다가 2년 만에 폐위된 비운의 어린 왕의 짧고도 슬픈 이야기를 소개합니

kjh11225.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