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역사교육 참고 자료/조선시대 사건수첩
[조선의 킹메이커 ⑪] – 흥선대원군 - 고종을 왕으로 만든 조선의 마지막 킹메이커
평산훈남
2025. 5.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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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뒤흔든 킹메이커 시리즈 마지막 편.
왕이 될 수 없었던 자, 흥선대원군이 어떻게 고종을 왕으로 만들고 조선 말기 정국을 주도했는지 알아봅니다.
📌 왕이 될 수 없는 자, 그러나 누구보다 강한 권력을 쥔 사람
조선 말기, 혼란의 시기를 단숨에 장악한 인물,
바로 흥선대원군 이하응입니다.
그는 왕이 될 수 없는 왕족의 방계였지만,
뜻밖의 기회로 아들 고종을 왕위에 올리며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됩니다.
‘왕을 만든 아버지’이자,
스스로 정치를 이끈 섭정자로 활약한 흥선대원군.
그는 조선의 마지막을 어떻게 설계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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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메이커: 흥선대원군 – “내 아들을 왕으로 만든다”
- 철종의 후사 없음 → 왕위 계승 구도는 혼란.
당파 간 대립, 외척 견제 속에서 대원군 이하응이 부상합니다. - 그는 권력에 욕심이 많았지만 자신이 왕이 될 수 없음을 알았죠.
대신, 어린 아들 **이재황(훗날 고종)**을 왕위에 앉히며
섭정의 자리에 올라 실권을 잡습니다. - 이때의 정국 주도권은 온전히 흥선대원군에게 있었고,
조선은 그에 의해 강하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 대원군의 통치 – 개혁과 보수의 공존
고종이 즉위한 이후, 흥선대원군은 섭정으로서 강력한 정치를 펼칩니다.
- 세도정치 타파:
안동 김씨 등 외척들을 숙청하고,
인사권을 장악하여 권력 구조를 재편합니다. - 경복궁 중건:
왕실의 권위를 되살리기 위해 대규모 복원 사업을 벌입니다.
백성들에게는 큰 부담이었지만, 왕권 강화 상징이었죠. - 서원 철폐:
전국 600여 개 서원 중 47개만 남기고 나머지를 없앴습니다.
이는 지방 사족들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조치였습니다. - 통상수교 거부 정책:
서양과 일본의 개항 요구에 완강히 맞서며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 등 외세와 충돌합니다.
🤝 퇴장과 복귀 – 명성황후, 그리고 대원군의 최후
하지만 권력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 고종이 친정(親政)을 시작하면서 명성황후와의 갈등이 깊어지고,
대원군은 점차 정치에서 밀려납니다. - 이후 명성황후가 밀어낸 개화파의 등장,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등으로
조선은 급변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죠. - 대원군은 몇 차례 정계에 복귀하지만,
예전의 권세를 회복하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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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하며 – 조선 말기의 마지막 설계자
흥선대원군은
왕이 되진 못했지만, 왕을 만들고 정국을 좌우한
조선의 마지막 킹메이커였습니다.
그의 개혁은 분명 의지가 있었지만,
무리한 강압과 시대착오적인 폐쇄성은
결국 조선의 몰락을 막지 못했죠.
하지만, 한 사람의 집념이
한 나라의 판도를 뒤흔든 사례로,
그는 조선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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