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평산훈남 일곱번째 역사스토리는 5천년 한민족 역사 중 최고의 성군이라 평가되는 세종대왕 입니다. 5만원 권이 생기기 전 최고액 화폐 단위였던 만원권에 당당히 이름 올리신 세종대왕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초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은 대한민국 국민 중 세종대왕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보통의 사람들은 세종대왕 하면 아주 온화하고 스마트한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과연 조선시대의 세종대왕은 그러했을까요? 궁금증을 뒤로한 채 세종대왕에 대한 키워드를 알아 볼게요.
* 세종 키워드
- #반전 이미지
- #모태왕족
- #국경확립
- #훈민정음
- #애민정신
세종대왕은 그 업적이 너무나도 많은 분이기 때문에 하나의 포스팅으로 정리하는것 자체가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축약하여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포스터에서는 세종대왕에 대하여 큰 그림만을 그리고 세부적인 내용은 훗날 하나하나의 테마로 추가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키워드 하나씩 이야기 해볼까요?
#반전 이미지
서두에서도 말씀드린대로 보통 세종대왕을 연상하면 매우 온화하고 항상 품행이 단정하며 도덕적이고 박학다식한 이미지, 즉 화라고는 낼것 같지도 않은 따뜻한 아버지의 미소를 짓고있는 그런 인자한 모습을 상상하곤 하죠. 과연 세종 대왕은 그랬을까요?
그가 온화한 성격에 도덕적이고 유능하고 인자한 성품은 맞습니다. 조선왕조 실록에도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고 해요. 좋은 말은 모두 가져다 붙여서 세종대왕을 묘사하고 있어요. 거의 엄친아의 끝판왕으로 묘사되어있죠.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잘 모를수도 있는 반전 이미지도 있어요.
다음은 세종에게 양위하여 상왕이 된 태종이 세종대왕에게 한 말이에요. "주상은 사냥을 좋아하지 않으시나 몸이 비중하시니 마땅히 때때로 나와 노니셔서... " 또는 조선왕조 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주상이 몸이 무거우니 내일은 주상과 더불어 노상왕을 모시고 동쪽 교외 광진에 가고자 한다. 또 앞으로 양근,광주에서 사냥할 터이니.." 앞의 내용들을 미루어 보아 세종대왕은 위 사진속의 스마트한 한석규 님과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몸이 비대한 뚱뚱한 체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는 운동이 되는 신체활동을 좋아하지 않고 독서나 악기연주 같은 신체활동이 없는 취미활동을 즐겼으며 특히나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을 정도로 고기를 많이 먹는 식습관에서 비롯한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세종대왕의 고기사랑은 태종의 유언에서도 언급될 만큼 유별난 것이었는데요, 태종이 유언을 남길때 "주상은 고기가 없으면 수라를 들지 않으니 건강을 해칠까 심히 염려된다. 나의 상중이라 할 지라도 주상에게 고기를 드시게 하라" 라는 특명을 유언에 남기기도 해다고 해요.
이러한 식습관과 취미생활을 오랜시간 지속한 결과 세종대왕은 어린나이부터 비만, 당뇨, 피부병, 눈병 등 많은 성인병으로 고생을 하셨어요. 물론 세종대왕이 32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많은 업적을 남기셨지만 건강관리를 잘하셨더라면 좀더 오랜기간 재위하면서 더 많은 업적을 남기지 않으셨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모태왕족
세종대왕은 조선시제 왕중 최초의 모태왕족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태어나보니 이미 왕족이었다는 거죠. 이전의 태조 이성계는 말할것도 없고 정종 이방과, 태종 이방원은 본인들이 태어났을때는 그냥 고려 끝자락 함경도에서 한가닥 하는 그저 그럼 장군의 아들일 뿐이었죠. 이후에 태조가 역성형명을 통하여 조선을 건국하자 자연스럽게 왕자가 되고 왕위에 올랐던 그들과는 달리 세종대왕은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 태어난 첫번째 왕입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사실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극히 낮은 왕족이었어요. 태조의 다섯째 아들인 태종의 세번째 아들이었기 때문이죠. 사실 태종이야 조선 초기 왕권이 아직 안정되기 전이라 서열보다는 능력이 좀더 인정받는 시대라 다섯째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능력으로 왕위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세종은 그 경우가 다릅니다. 자신 아버지가 무려 조선왕조 통틀어 가장 강력한 왕권을 구축한 태종 이방원이기 때문이죠. 왕권이 안정되었을 때는 장자계승의 원칙을 따라 왕위를 물려받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세종대왕이 충녕대군 시절에 태종이 충녕에게 한 말 중 "너는 아무것도 할일이 없으니 장차 몸을 편안하게 살아갈 방도를 찾으라" 라고 할 정도로 태종도 역시 충녕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어요. 첫째인 양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했고 세자로도 책봉을 했었죠. 하지만 양녕이 청년이되자 비행을 일삼기 시작하는데 음주, 가무, 여색을 밝이기 시작합니다. 그의 비행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자 결국 태종은 양녕을 폐세자 시키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게 된 거에요. 물론 양녕대군과 충녕대군 사이에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이 있었지만 충녕대군이 그 성품과 능력이 뛰어났기도 하였고 효령대군은 결국 스님이 되는 길을 택하였기 때문에 셋째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세자로 책봉하게 되었어요. 세자로 책봉되자 마자 두달만에 태종은 왕위를 아들에게 넘기고 자신은 상왕이 되었어요. 이에 세종은 왕이 되고 그의 아버지인 태종은 상왕이 되고 아직 살아있던 태종의 형인 정종은 노상왕이라고 불렸어요. 한나라에 왕이 세명이나 있었죠. 아무튼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은 모든 권한을 아들인 세종대왕에게 넘겼으나 군사를 움직이는 병권만은 자신이 움켜쥐고 있었요. 제 생각에는 태종이 이른시간에 아들에게 양위를 한 이유는 자신이 건재할 때 왕을 물려주고 아들로 하여금 실제 정사를 살피며 왕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수 있을동안 자신이 후견인이 되어주기 위함이 아닐까 해요. 본인이 죽고나서 갑자기 아들이 왕위에오른다면 여러 복잡한 문제들이 많이 발생할 수 있으니 그런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튼 세종의 즉위식은 다른 왕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에서 거행되었는데 보통 조선 왕의 즉위식은 선왕의 상중에 잠깐 상복을 벗고 이루어지는 행사라 마냥 기뻐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해요. 하지만 세종은 선왕 태종이 아직 건재하게 살아있는 중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정말 경사스럽게 그 즉위식이 진행되었다고 해요.
#국경확립
세종대왕은 현재의 우리나라 지도모양을 확립하신 왕이에요. 태종 시절까지만 해도 고려말 공민왕이 확보 한 철령이북지역 까지만 조선의 영토였으나 세종대왕 재위기간 동안 백두산 호랑이 김종서 장군을 시켜서 동북면에 4군 6진을 설치하여 영토를 확장하였으니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현재의 한반도 영토가 이때 정해진 거에요. 그리고 남쪽으로는 지긋지긋하게 출몰하는 왜구들의 근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하기도 하였는데 사실 이 대마도 정벌은 솔직히 세종의 업적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앞서 언급된 대로 태종은 세종에게 양위하면서 모든 권한은 넘겨 주었지만 병권만은 본인이 쥐고 있었다고 했죠. 이 대마도 정벌은 태종이 상왕으로 있을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며 태종의 명으로 이종무 장군이 출정하여 왜구를 소탕한 것이기 때문에 엄연히 태종의 업적이라 보는것이 맞을것 같긴 해요. 하지만 어찌되었든 세종대왕 재위기간에 발생한 일이므로 여기에서 소개는 할게요. 여튼 이 대마도 정벌 결과 일본과의 무역을 단절하였으나 이후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여 제한적인 무역을 허락하는 계혜약조를 통하여 일본과 무역을 다시 진행하게 되었어요.
#훈민정음
드디어 세종대왕 최대의 업적이라 할 수 있는 훈민정음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게요. 사실 훈민정음 하나의 테마 만으로도 그 분량이 엄청 많겠으나 여기서는 너무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을게요. 우선 훈민정음이 창제된 조선 전기의 시대를 살펴볼게요. 조선 전기는 신진사대부가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 세상이었어요. 신진사대부는 고려말 친원파인 권문세족을 견제하기위에 나타난 정치집단이며 이들은 유학을 공부하고 친명정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었죠.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공자가 사용한 한자를 최고의 글자라 생각하였고 아버지의 나라 명이 사용하는 한자야 말로 자신들이 배우고 익혀야 하는 유일한 글자라고 생각하였죠. 그런 시대에 세종대왕이 갑자기 우리글을 만들겠다고 하니 온 나라의 사대부들이 반대를 하고 나섭니다. 아버지의 나라 명의 글자를 두고 독자적인 글자를 만들어 사용한다는 것은 폐륜이라고 생각하였고 명이 조선에 간섭할 명분을 준다는 이유였어요.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였을 뿐이고 사실은 글자를 자신들 양반들만 독점하기 위함이었죠. 글자를 안다는 것은 당시 엄청난 힘이었어요. 글자를 알면 공부를 할수 있었고 공부를 하면 많이 알게되고 많이 알게 되면 잘 살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죠. 거기다 한자는 배우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글자에요. 현대 사회에도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조선시대야 말해 뭐하겠어요. 백성들을 무지한 상태로 남겨두어 그들을 지배하기 쉬운 상태로 남겨두는 것, 즉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한자를 이용하고 있는 상황인데 갑자기 온 백성이 쉽게 배울수 있는 한글을 만들겠다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들의 왕이 주장을 하니 청천벽력 같은 일인거죠. 그래서 훈민정음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엄청난 노력을 받쳐 만들어낸 글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집현전 학자들도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어요. 그 근거로 훈민정음 창제가 진행된 시기가 세종이 아들 문종에게 대리청정을 시키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시기였다는 것을 들고 있어요. 모든 사대부들이 반대를 하기에 아무도 믿을 수 없게된 세종대왕은 본인과 그의 아들중 대리청정을 하고있는 문종을 비롯하여 능력이 뛰어난 수양대군등 극소수의 인원들만 참여시켜 훈민정음을 만들어 냈다는 주장이 있는거죠. 사실 저도 이 의견에 좀더 믿음이 가긴 해요. 막말로 집현전 학자들 중에도 사대부가 있을텐데 집현전에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좀 어폐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인거죠. 오로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에 글자를 만들어 버린 세종대왕의 그 엄청난 능력과 집념은 대단한 것 같아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소리 라는 뜻의 이름 만으로도 세종대왕이 어떤 마음으로 한글을 만들었는지 알수 있을것 같아요.
#애민정신
세종대왕은 참으로 백성을 사랑하신 분입니다. 오로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글을 만드시고 당시 군자의 학문이라는 유학만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되는것은 어떠한 것이라도 가리지 않고 공부하신 분이 세종대왕 이시죠. 당시 천민 출신인 장영실을 발탁하여 여러 발명품을 만들게 하였으니 이 또한 장영실의 능력이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된다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리 하였을 거에요. 백성들이 농사를 짓는데 도움이 되는 천문관측 기구인 간의와 혼천의, 물시계인 자격루, 해시계인 양부일구, 하천수위 측량기구인 수표, 강우량 측정기인 측우기 등이 세종 재위시절에 발명되었어요.
이러한 발명품 덕에 백성들은 곡식을 파종할 시기를 결정할 수 있고 기상을 예측할 수도 있고 홍수를 대비할 수도 있게 되었죠. 이 뿐만 아니라 세종대왕은 어려운 백성을 구제함에 있어 진심인 분이셨습니다. 세종 5년의 실록에 보면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고 근본이 튼튼해야지 나라가 평안하게 된다. 자신이 외람되게 이들의 주인이 되었으니 오로지 백성들을 위함에 듣고 보는바가 미치지 못할까 걱정된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해요. 자신이 만민의 임금이 되었으니 오로지 내 백성들을 아끼고 보살펴 잘 살수 있도록 함에 부족함이 있을까 걱정이 된다는 생각을 가진 군주가 전세계 역사상 몇명이나 있을까요. 이렇듯 세종실록에는 백성들을 위하는 언행이 기록된게 정말 수두룩 하게 기록되어 있어요. 자신은 백성들을 살펴야 하니 정사에 대해서는 황희와 맹사성 같은 유능한 재상을 앉혀놓고 그들로 하여금 대다수의 의사결정을 하게 하는 의정부 서사제를 시행한 세종대왕. 그는 정말이지 동서양을 아우르는 최고의 성군임에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런 군주가 우리 역사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자부심이 느껴지네요.
오늘도 끝가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위 내용들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역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자녀분들이나 어떻게 역사 공부를 해야할지 그 방법을 모르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녀의 역사 교육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자녀 역사교육 참고 자료 > 조선왕조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위 찬탈자, 세조 - 계유정난의 피바람으로 권력을 잡다. (2) | 2023.09.04 |
---|---|
조선 최초 적장자 출신 왕, 문종 - 준비된 왕, 부족한건 수명뿐.. (0) | 2023.08.31 |
조선왕조 가장 강력한 왕, 태종 이방원 - 왕권강화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은 왕 (0) | 2023.08.28 |
조선의 건국자, 태조 이성계 - 위화도 회군으로 건국의 기틀을 잡다. (0) | 2023.08.21 |
조선후기 최고의 성군, 정조 -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2) | 2023.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