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평산훈남 역사 스토리 네번째 편은 정조입니다.
오늘은 조선후기 최고의 성군이라고 평가받는 정조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드라마 <이산>으로 많이 익숙한 왕입니다.
배우 이서진 님이 좋은 연기를 하셨던 작품으로 너무 재미나게 본 기억이 있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정조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것 같아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정조대왕으로 결정하게 되었어요.
조선전기 최고의 성군은 누가뭐라해도 세종대왕이고, 조선후기는 바로 오늘의 주인공
정조대왕이 계셨습니다.
그럼 정조의 키어드를 알아볼까요?
* 정조 키워드
- #사도세자
- #연산군
- #다재다능
- #비밀편지
- #수원화성
그럼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도세자
영조와 정조를 이야기할때 사도세자 이야기는 빠질수 없는것 같아요. 바로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가 사도세자 입니다. 사도세자는 영화 <사도> 로 만들어지기도 하였지만 꼭 그때문이 아니더라도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한번쯤을 들어보셨을 거에요. 바로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같혀서 죽은 억울한 세자 라는 이미지로 우리에게 많이 각인되어 있을꺼에요. 하지만 실제 역사서를 보면 사도세자는 영조가 아들을 죽일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어요. 또한 사도세자의 죽음을 아버지 영조 뿐만 아니라 어머니 영빈 이씨, 부인 혜경궁 홍씨, 조정 대신들 까지도 사도세자의 죽음을 반대하지 않았다고 해요. 딱 한사람, 정조만이 아버지의 죽음을 막기위해서 할아버지 영조에게 빌었으나 결국 사도세자는 아버지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요.
사실 사도세자는 처음에는 영조의 사랑을 듬뿍 받았어요. 영조가 42세의 고령에 어렵게 얻은 아들이 바로 사도세자입니다. 물론 사도세자 이전에 효장세자가 있었으나 어린나이에 죽어버려 유일한 영조의 아들이된 사도세자는 아버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어요. 심지어 사도세자가 막 돌을 지났을 무렵 바로 왕세자로 책봉할 정도로 아끼고 사랑했었죠. 그 기대에 못지않게 사도는 어려서부터 총명했다고 해요. 하지만 그 기대가 너무 큰 나머지 아버지 영조는 아들에게 현대로 치면 거의 아동학대에 가까운 행동들을 했다고 해요. 너무 엄하게 아들을 대하여 칭찬보다는 질책을 많이 했다고 해요. 그래서 사도세자가 9세때에는 아버지가 너무 무서운나머지 마주치기를 두려워했다고 해요.
한번은 영조의 정치적 목적으로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한적이 있었는데 이때도 사도세자가 어떤일을 판단하여 영을내리면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왜 마음대로 영을내리냐고 질책하여 다음 문제를 가지고 사도세자가 영조에게 어찌할지 물으니 그것도 혼자 처리하지 못하먀며 또 면박을 주었다고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도세자의 마음은 답답하기 그지없었을듯 해요.
이지경이 되니 하루세번 부왕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는 예도 하루 이틀 빼먹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몇달동안 문안인사를 드리지 않기도 했다고 하니 얼마나 아버지가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면서 사도세자는 점점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 광인(미친사람) 이 되어버렸다고 해요. 옷을 입혀주는 궁녀를 죽여버리는가 하면 자신의 아들을 나아준 첩도 죽여버리고 그의 아들(정조 아닙니다)도 연못에 던져버리는가 하면 궁궐내의 궁인을 죽여 머리를 베어들고 돌아다니는 등 온갖 기이한 일을 일삼고 다녔다고 해요. 사도세자가 이렇게 목숨을 빼앗은 이가 대략 100여명에 달한다고 하니 영조로서는 아무리 자기 아들이라도 죽일수 밖에 없었던 거죠. 흔히들 말하는 역모죄니 뭐니 이런건 결국에는 핑계였을것 같고 미쳐버린 세자에게 왕위를물려 줄 수는 없으니 죽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연산군
정조 이야기를 하는데 뜬금없이 연산군이냐 하는 생각이 드실텐데. 사실 정조의 왕이되기 전 상황을 보면 조선 최악의 폭군이라고 알려진 연산군과 너무나도 상황이 비슷해요. 심지어 정조가 더 심각한 상황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정조의 세손시절 부터 왕위를 계승하고 난 이후에도 조정 대신들의 견제는 어마어마하게 컸다고 해요. 조선의 역사에 이미 연산군이라는 폭군이 있었고 그와 너무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정조가 연산군과 같이 폭군이 되는것을 많이 두려워 했다고 해석하는 역사학자들이 많은것 같아요. 솔직히 저라도 그런 생각이 들었을것 같아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연산군이 폭군이 된 이유는 자신의 친모인 폐비윤씨에 대한 일을 알게되면서 부터 폭군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폐비윤씨의 죽음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은 모조리 죽여버리면서 절대 왕권을 휘두르며 폭군의 길로 들어선 연산군과 같이 정조도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련이 있는 사람에게 복수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으니 다들 걱정했을 거에요. 심지어 연산군과 달리 정조는 아버지의 죽음을 두눈으로 똑바로 지켜보았고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니 더 심각한 상황이었던 거죠. 실제로 정조는 왕위에 오르고 난 후 홍국영을 앞세워서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련있는 일부 인원에 대하여 복수를 하기는 했습니다.
어쨌든 폭군 연산군 보다도 더 암울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도 폭군이 되지 않고 조선후기 최고의 성군으로 거듭난 정조대왕은 존경받아 마땅한것 같아요.
#다재다능
정조는 정말이지 다재다능하셨다고 해요.
첫번째로 학문이 어마어마하게 뛰어났다고 해요. 조선왕조 역대 왕들중 으뜸이라해도 부족하지 않을정도로 학문이 뛰어났다고 하니 정말 공부를 대단히 많이 하신것 같아요. 이렇게 된 이유중 하나가 세손시절부터 각종 암살 위험에 시달리다 보니 잠을자지 않기 위해서 책을 계속 읽다보니 다방면에 걸친 학문이 쌓였다고 하니 독서가 중요하긴 중요한것 같아요. 정조는 실제로 왕이 신하들에게 학문을 배우는 경연을 폐지하고 왕이 신하들을 교육하는 성격의 초계문신제를 시행하였다고 하니 그 학업 성취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가늠이 되질 않습니다. 신하에게 시짓기 시험을 내서 불합격하면 창덕궁에 있는부용지라는 연못에 있는 작은 섬같은 곳에 조각배를 타고 들어가게 하여 귀양보냈다고 해요. 그 유명한 정약용도 귀양을 같다고 합니다. 정조의 유머감각 또한 남달랐던것 같아요.
두번째는 무예도 뛰어났어요. 그야말로 문무에 모두 뛰어난 군주라니. 아마도 역대 조선왕조 임금들 중에는 유일하지 않을까요? 어떤 학자는 정조의 무예가 조선을 창건한 태조 이성계와 북벌을 외친 효종 다음가는 수준이었을 거라 짐작하기도 할 정도니 정말 대단한것 같아요. 드라마 <이산> 에서는 정조가 너무 부드러운 이미지로 연출되어 정조의 무예출중함이 표현되지 않은것 같아 좀 아쉽기도 해요. 활을 쏘면 50발중 49발을 맞췄다고 하는데 이 한발마저도 임금이 교만해지면 안되어 일부로 쏘지 않았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실력인것 같아요. 그리고 무예도보통감이라고 하는 무예교본을 그 유명한 무사 백동수와 함께 편찬하니 조선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무예까지 정리하여 누구나 쉽게 배울수 있도록 했고 병법서도 편찬하여 병사 개인 뿐만 아니라 장군들의 역량도 키울수 있도록 하니 정말이지 대단한 군주같아요.
세번째는 의학에 많은 지식이 있었다고 해요. 계속된 암살 및 독살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수준이 그냥 어깨너머로 배운 정도가 아니라고 해요. 그 대단한 동의보감의 내용이 부실하여 직접 보강하기도 했고 자신의 병을 자신이 직접 처방하였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것 같아요
네번째는 술을 잘마셨다고 해요. 술을 마시면서 신하들에게 억지로 술먹이는 버릇이 있어 신하들이 많이 곤혹스러웠다고 해요. 당시 정조가 신하들에게 하사한 술은 삼중소주라 하여 3번 증류한 약 70도 이상의 독주인데 이런 술을 신하들에게 억지로 먹였으니, 신하들이 정말 정조와 술먹기 싫어했을것 같아요.
이렇듯 학문은 물론이고 무예도 뛰어났고 의학에 심지어 술까지 잘마셨다고 하니 그러면서도 진심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신 정조대왕은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비밀편지
한나라의 임금이 비밀편지를 썼다는것도 놀라운데 그 수가 수백통에 달한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일인것 같아요. 정조의 최대 정적은 당시 노론벽파세력의 영수인 심환지 라고 하는 사람이었어요. 정조와 사도세자를 지지하는 시파와 사도세자를 부정하고 죽음에 이르게하였을 뿐만아니라 정조도 죄인의 아들이라는 명목으로 인정하려들지 않는 벽파세력이 많이 대립하고 있었어요. 심지어 벽파세력이 병권을 장악하여 훨씬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 벽파의 영수인 심환지에게 정조가 수백통의 비밀편지를 쓴것도 모자라 내일 조정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말한마디 행동하나 모두 지시하였고 그 지시를 그대로 실행에 옮긴 심환지에 대해서 이 두사람은 도대체 어떤 관계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분명 뜻을 달리하는 정적인데 그런 적에게 편지를 보내는것도 이상한데 그 편지에서 지시받은대로 그대로 실행에 옮긴다는게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것 같아요. 심지어는 그렇게 지시해서 실행에 옮긴 것 중에는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하는 결과를 낳은 행동도 있었다고 하니 참 놀라운 일이죠. 정조와 심환지, 이 둘은 단순히 의견을 대립하는 정적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있었던것은 아닐까 고민해 보게 됩니다.
#수원화성
오늘날의 수원에 있는 그 수원화성이 정조가 만든 성입니다. 정조는 한양의 도심이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거대해지다 보니 신도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것 같아요. 그리고 노론벽파가 이미 군권을 장악하고 있다보니 새로운 군사 기지 개념으로 수원화성을 만든것 같기도 하구요. 정조는 수원 화성을 만든 후 거기에 자신의 최정에 친위부대인 장용형을 6천명이나 배치했다고 해요. 장용형은 왕위에 오른 정조가 병권이 이미 벽파세력에 넘어간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위해서 정조 직속 호위부대로 30명으로 시작했다고 해요. 장용형은 오로지 능력만으로 선발하였고 그 출신이 천민이든 서자든 관계가 없이 평등한 대접을 받았다고 해요. 여기에 무사 백동수가 선발되어 많은 활약을 했다고 하죠. 최초 30명의 무사들로 시작된 장용형이 훗날 최대 2만명으로 늘어났다고 하니 그 장용형을 기반으로 군부의 세력을 압도하고 나라의 군권을 되찾아 올수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수원 화성이라는 신도시와 성을 만들고 거기에 자신의 직속부대중 상당수를 배치하니 노론벽파세력도 엄청난 압박을 받았을것 같아요. 한번은 정조가 수원화성에 조정대신들을 모아놓고 장용형의 군사훈련을 직접 지휘한 적이 있었는데 황금갑옷을 입은 정조가 성위에서 직접 군사를 지휘하니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장용형 군사들의 그 웅장한 모습에 노론벽파 세력들이 받은 위압감은 말로 표현할수 없을것 같아요.
#결론
정조대왕은 조선후기 최고의 성군이라 평가되며 정말 많은 업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인품, 학문, 무예, 의학, 음주 등 정말 어느것 하나 모자람이 없는 군주였으며 그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또한 누구보다 뛰어났던 군주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안타깝게도 그런 정조에게 많은 생명을 주지 않았죠. 47세의 젊은 나이에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사망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만약 정조가 더 오래 조선이라는 나라를 통치했다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좀더 밝은 미래로 나아갈수 있지 않았을까요?
참고로 정조 재위기간에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프랑스에서는 시민혁명이, 미국에서는 독립이 이루어지고 있었어요. 서구 열강들이 근대화 시대로 발전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나라 조선은 당파싸움에 휘말리고 있었으니.. 그 당파싸움의 결과로 정조가 독살되었다는 주장까지 있으니 너무나도 안타까울 뿐입니다.
오늘도 평산훈남의 역사이야기 네번째 정조대왕편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이글을 쓰면서 나무위키, 황현필 한국사 유튜브채널, 역사스페셜 의 내용을 참고하였을 알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위 내용들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역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자녀분들이나 어떻게 역사 공부를 해야할지 그 방법을 모르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녀의 역사 교육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자녀 역사교육 참고 자료 > 조선왕조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왕조 가장 강력한 왕, 태종 이방원 - 왕권강화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은 왕 (0) | 2023.08.28 |
---|---|
조선의 건국자, 태조 이성계 - 위화도 회군으로 건국의 기틀을 잡다. (0) | 2023.08.21 |
조선왕조 가장짧은 재위기간, 인종 - 문정왕후만 알고 있을 의혹들.. (2) | 2023.07.19 |
조선왕조 최고의 금수저, 단종 - 사육신의 충성에도 불구하고 삼촌에게 죽임당한 왕 (1) | 2023.07.18 |
대동법을 최초로 실행 한 성군의 재목이었돈 광해! - 그러나 쫒겨난 왕 (3) | 2023.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