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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역사교육 참고 자료/조선왕조이야기

조선왕조 최고의 금수저, 단종 - 사육신의 충성에도 불구하고 삼촌에게 죽임당한 왕

by 평산훈남 2023.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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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평산훈남 역사 스토리 두번째편은 단종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종을 비운의 국왕, 어린나이에 즉위한 후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한 심약한 왕으로만 많이 알고 계시더라구요. 이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 아시나요?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완벽한 유일무이한 정통성을 보유한 왕이 단종이라는 사실을..

그러한 정통성을 가지고 왕위에 올랐으나 그를 보호해 줄 왕실어른이 없어서 어린나이에 왕권을 찬탈당한 단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영화 <관상>

단종에 대한 키워드는 아래와 같습니다.

 

* 단종 키워드

  • #금수저 단종
  • #계유정난
  • #사육신

그럼 키워드를 하나씩 짚어가며 이야기를 시작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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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단종

단종은 조선왕조 역사상 유일할 뿐만 아니라 중국역사에서도 매우 찾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금수저였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단종은 세종의 적장자인 문종이 세자일때 태어난 적장자 세손이었어요. 심지어 조부인 세종은 증조부인 태종의 적자이고 태종은 고조부인 무려 창업군주 태조의 적자이죠. 바꾸어말하면 태조시절부터 한번도 적자의 왕위세습이 깨어진적이 없는대다가 세종 보위기간중 적장자 출신 왕세자인 문종의 아들로 태어난 적장자였던 거였어요. 이와 비슷한 케이스가 숙종이 있긴 하지만 숙종은 아버지인 현종이 왕이었을때 태어났으므로 적장차 선왕의 적장자이긴 하지만 적장자 출신 왕세자의 적장자는 아니었던 거죠. 현재왕-적장자 왕세자-적장자 왕세손의 왕실 후계구도를 이루며

세손->세자->왕 테크트리를 탄 왕은 조선왕조 통틀어서 단종이 유일하답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거냐면 단종이 아무리 어린나이에 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도 단종의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문제 삼을 수 없는 순도 100% 왕위계승 정통성 가지고 있었다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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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

계유정난은 세종의 아들이자 문종의 동생이며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이 쿠테타를 일으켜 단종의 지지 기반이었던 안평대군김종서, 황보인 등 충신들을 제거한 사건입니다. 단종의 팔다리를 다 잘라버린것과 마찬가지였죠. 앞서 말했듯이 단종이 엄청난 왕위 정통성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계유정난은 말그대로 명분이 없는 쿠테타입니다. 단종이 어리고 이를 지켜줄 왕실 어른이 한명도 없는 상황에서 힘이센 수양대군이 그의 보위를 빼앗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던 거죠. 계유정난 발생후 2년 후 단종은 아무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 상황에서 수양대군에게 왕좌를 내어주고 상왕으로 있다가 사육신의 단종복위 운동 실패로 인하여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귀향갔다가 사약받고 죽었어요. 단종이 즉위했을 당시에 이를 지켜줄 어머니(대비)나 할머니(대왕대비) 한분만 있었어도 계유정난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수도 있었다는 의견이 많은것 같아요. 문종이 왕세자인 시절 세자빈 권씨(훗날 현덕왕후로 추존)가 단종을 낳은 다음날 숨을 거두어 버려서 단종은 엄마 얼굴도 모른채 자랐고 단종의 친할머니인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는 세종과 문종보다도 더빨리 죽어버려 할머니도 없는 상황에서 할아버지인 세종이 죽고 그뒤 왕위를 이어받은 아버지 문종도 즉위 2년만에 죽어버렸으니 단종이 아무리 훌륭한 왕위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나도 왕권이 약해져 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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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사육신은 죽은 여섯 신하라는 뜻으로 계유정난 이후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되어 죽은 6명의 관리를 말합니다.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가 사육신입니다. 대부분 세종시절부터 신임을 받아온 집현전 학자 들이었다고 해요. 수양대군이 단종을 상왕으로 몰아내고 자신이 보위에 오르자 사육신을 주축으로한 약 70여명의 신하들이 수양대군을 죽이고 단종을 다시 복위시키기로 결의하게 됩니다. 때마침 명나라의 사신이 명나라로 돌아가는 환송연 이 예정되어있었는데 이때 연회장 안에서 칼을차고 수양대군 왕을 호위하는 별운검 이라는 직책을 사육신의 한사람인 유응부와 또다른 사육신인 성삼문의 부친 성승이 맡게 되었어요. 모두 비무장인 연회장에서 유일하게 무장을하고 수양대군의 최 측근에서 호위하는 무사가 사육신이었던 거죠. 하늘이 내린 이 기회는 한명의 눈치빠른 사람에 의해 좌절됩니다. 다들 한번쯤 들어보셨을 이름인 한명회가 연회전 연회장을 한번 둘러보고 그 연회장이 너무 좁으니 별운검을 들이지 말라고 수양대군에게 청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성삼문은 별운검을 없애는 것은 관례를 어기고 왕의 호위에 문제가 생긴다는 명분으로 별운검 취소를 반대하였지만 신숙주가 찬성하여 별운검이 연회장이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해요. 이때문에 사육신의 거사는 훗날을 기약하며 연기되었고 이때 사육신의 거사에 동참했던 집현전 학자 김질은 뒷일이 두려워서 장인 정창손에게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고 정창손은 그길로 수양대군에게 이 모든 사실을 고발하게 됩니다. 이로서 사육신 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70여명의 관리들이 잡혀가서 고문을 당하고 수양대군의 친동생인 금성대군까지 목숨을 잃게 됩니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때 친동생인 안평대군을 죽이고 사육신 사건때 또다른 친동생인 금성대군을 죽이면서 까지 보위에 오르고 그 왕위를 지켰던 거에요. 사육신의 고문과정에서 단종이 이 사실을 알았고 지지하기 까지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수양대군은 단종을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등시키고 지금의 강원도 영월로 귀향 보냅니다. 그 후 사약을 내려 죽이려 하였으나 단종이 사약을 먹고 죽었는지, 자살을 하였는지, 사약을 먹었는데도 죽지않아 집행하는 관리가 단종을 살해하였는지에 대해서는 기록마다, 역사학자들마다 의견이 많이 나뉜다고 해요. 일단 조선왕조실록에는 단종이 자결하였다고 나와있다고 하네요. 참고로 사육신처럼 수양대군을 몰아내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평생 단종에 대한 충절을 지킨 생육신도 있어요.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 이 이들인데 이중 남효온은 육신전이라는 책을 써서 사육신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결론

어쨌든 단종은 비운의 왕이었고 왕으로서 그를 평가하기에는 재위기간이 너무나도 짧았기 때문에 평가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공부천제 세종대왕의 손자이며 현재로 치면 전과목 A+를 받을만큼 학문이 뛰어났다는 문종의 아들 답게 어릴적부터 학문이 뛰어났고 짧지않은 세자기간 동안 제왕학 교육을 받았으므로 수양대군이 그를 쫒아내지 않고 잘 돕기만 했어도 분명 성군으로 성장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나도 완벽한 탄생과는 반대로 너무나도 빈약한 성장배경이 마치 한편의 드라마같은 삶을 산 단종. 세종이 단종을 염려하여 김종서 에게만 힘을싫어줄게 아니라 안평대군이나 금성대군에게도 막강한 권력을 줬더라면, 문종이 건강하여 2년이라는 짧은 재위기간이 아닌 최소 10년만이라도 보위에 있었더라면, 세종의 정비 소헌왕후가 일찍 죽지않고, 단종의 모친 현덕왕후가 단종 출산 다음날 죽지 않았더라면,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의 집안이 좀더 힘이 있었더라면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개인적으로는 문종의 짧은 재위기간이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단종 사후에도 수양대군으로 부터 묘호도 받지 못하고 노산군의 신분으로 있다가 훗날 숙종때 조선 2대왕 공정왕과 함께 각각 정종, 단종으로 추존되며 복위되었습니다. 

 

오늘도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글을 작성하면서 나무위키 냉용을 참조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위 내용들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역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자녀분들이나 어떻게 역사 공부를 해야할지 그 방법을 모르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녀의 역사 교육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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